거절률 급증에 항소 돕는 AI 도구 인기… 전문가들 “인간 감독 없으면 위험” 경고
미국 의료 시장에서 보험사와 환자 사이에 ‘인공지능(AI) 대 AI’의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사전 승인 절차를 강화하자, 이에 맞서 환자와 의료진도 AI 도구로 무장해 대응에 나선 것이다. 복잡한 의료비 청구 시스템 속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한 기술적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최근 등장한 ‘쉬어 헬스(Sheer Health)’나 ‘카운터포스 헬스(Counterforce Health)’ 같은 서비스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이들 AI 도구는 난해한 의료비 청구서를 분석하고, 보험사의 거절 사유를 파악해 맞춤형 항소 편지까지 작성해준다. 제프 위튼(Jeff Witten) 쉬어 헬스 공동창업자는 “1,500달러짜리 청구서가 왜 청구되었는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는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환자가 높은 본인 부담금과 공제액, 네트워크 내외 규정 등 복잡한 약관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포기해왔다.
보험사들의 AI 도입 확대는 지급 거절률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용보고업체 엑스페리언(Experian)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청구 건수의 10% 이상이 거절당한다고 응답한 의료 제공자 비율이 3년 전 30%에서 올해 41%로 급증했다. 카이저가족재단(KFF) 데이터에서도 2023년 오바마케어(ACA) 마켓플레이스 보험사들이 네트워크 내 청구의 약 20%를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나이티드헬스(UnitedHealth) 등 대형 보험사들은 AI가 업무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한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알고리즘이 노인이나 특정 환자군의 치료를 조직적으로 거부하는 데 악용된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규제 움직임도 활발하다. 애리조나, 메릴랜드, 텍사스 등 여러 주에서는 보험사가 AI를 사전 승인이나 의료 필요성 판단의 유일한 결정권자로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의원이자 응급의학과 의사인 아르빈드 벤카트(Arvind Venkat) 박사는 “의료는 개인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AI 사용 시 반드시 인간의 최종 검토가 있어야 한다”며 투명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AI 도구가 환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지만, 맹신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하버드 법대 카멜 샤카(Carmel Shachar) 교수는 “AI가 작성한 항소 편지가 겉보기엔 그럴듯해도 의학적 오류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환자가 걸러내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매튜 에빈스(Mathew Evins) 씨는 일반 AI 챗봇으로 작성한 항소 편지가 거절당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의료 기록의 코딩 오류를 찾아내고서야 수술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AI가 인간 전문가의 감독 하에 사용될 때 가장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