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대학 연구팀, 걷기 속도 약간만 높여도 노인의 신체 기능 크게 향상돼
나이가 들면서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약간의 노력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노쇠를 막을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카고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평소보다 분당 14걸음만 더 빨리 걷는 것만으로도 노년기 신체 기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쇠(Frailty)는 단순히 늙는 것과는 다른 의학적 상태로, 의도치 않은 체중 감소, 지속적인 피로, 근력 약화, 느린 움직임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활동 감소로 이어져 신체를 더욱 약하게 만들고, 결국 낙상, 장애, 입원 및 사망 위험을 크게 높이는 악순환을 만든다. 미국에서는 65세 이상 인구의 약 15%가 노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시카고 지역 14개 요양 시설에 거주하는 평균 연령 79세의 노인 102명을 대상으로 4개월간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은 ‘편안한 속도’로 걷도록 지시받았고, 다른 그룹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걷도록 권장받았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허벅지에 정밀 가속도계를 부착하여 분당 걸음 수를 정확히 측정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빠른 속도로 걸은 그룹은 분당 평균 100걸음을 기록한 반면, 편안한 속도로 걸은 그룹은 77걸음에 그쳤다. 더 중요한 것은, 빠른 걷기 그룹의 65%가 ‘6분 걷기 테스트’에서 의미 있는 기능 향상을 보인 반면, 편안한 걷기 그룹은 39%만이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6분 걷기 테스트’는 6분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측정하는 것으로, 장보기나 계단 오르기 등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다. 연구진은 평소 걷는 속도보다 분당 14걸음을 늘리는 것이 기능 향상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심박수 측정보다 걸음 수를 세는 것이 노인에게 더 효과적인 운동 강도 측정법이라고 강조했다. 베타 차단제와 같은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노인의 경우 심박수가 운동 강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분당 걸음 수는 스마트폰이나 피트니스 시계로 누구나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다.
이번 연구는 노인 요양 시설이나 지역 사회 센터가 막연한 ‘가벼운 운동’ 프로그램 대신 개인별 맞춤형 걷기 속도 목표를 설정하는 데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독립적인 노년 생활을 유지하는 비결이 ‘분당 14걸음 더하기’라는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목표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